나는 위대한 대테라의 수풀이 우거진 굴 속에서 태어났어.
내가 태어났을 때 온 금수들이 숨을 죽였다 하지.
희미한 금성과 알데바란성이 춤을 추던 날.
나는 또 천랑성의 주인이기도 했지. 나는 그곳에 곧잘 서신을 보내서
그곳의 연대와 토질을 측정하고 조언을 했지.
눈 감고도 할만큼 익숙하게 되어 후임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어.
그곳에서 나는 태엽장치의 발명을 도왔어.
사실, 이 땅에서 조금 참고했어. (도용했다고는 하지 말아줘!)
그곳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빈 퍼즐 조각마냥 태엽장치가 없었거든.
이로서 지구와 천랑성은 한층 닮게 되었을지도 몰라.
노래는 내가 즐기는 것이었으니, 모두가 나의 목청의 아름다움과
당당한 허스키함을 칭송했어. 나는 그렇게 20년을 보냈어. 나는 조금 늙기도 했어.
노래, 나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시가를 지어 불렀지. 이곳에서 사라지는
선배들은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존재들이니까.
어느날의 나는 국립동물원의 대표 맹수이기도 했어.
프랑스 국왕이 친히 나를 베를린으로 보냈지.
나의 부드러운 1등급 모피에 왕마저도 반해 나를 내주기 아까워할 정도였어.
하지만 나는 국교를 곤고히 하기에 너무나 충분했지.
나는 인간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지.
컨테이너 박스와 부드러운 짚이 깔린 철장, 또 제법 괜찮은 식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박수 갈채를 받았고 뉴욕의 빌딩의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나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지. 밤에는 인터뷰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
나는 어떤 매력적인 호랑이와 짚 속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어.
때론 인간의 아이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도 있었지. 그런 기회는 그럴 자격을 지닌
호랑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야. 어떤 부자는 나의 눈에 홀려 날 컨테이너에 실어
그의 섬으로 훔쳐가기까지 했어.
나는 훈장을 수여받았고,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잎 아래서 잠을 잤고,
언제나 늘어져있을수 있었어. 나는 살찌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
나는 사람의 맛을 볼 기회도 있었어. 그건 밀림에서 맛보았던 노루나 동물원의 썰린 고기와는
다른 이색적인 식사였어. 특히 털이 없다는 점, 부들부들하다는 점, 누린내가 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 특히 그 식사가 특별했던 부분은 그와 나와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었어.
그는 나의 사육사였고, 그와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 그는 아침마다 양철로 된 통을 두드려
나를 깨웠고, 밤에는 커다란 빗으로 털을 빗어주었어. 그러면서 어린시절에 사생아였기 때문에 받던 놀림과
어머니의 술버릇이 싫어서 코끼리 사육사에서 자다가 발견되어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나는 그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어. 그가 사라지는 것들의 대순환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아.
검고 두꺼운 발바닥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있을 때, 나는 명상을 했어.
나는 시간을 느리게 했다가 빠르게 했다가 하며 갖고 놀 수 있게 되었어.
또 그 와중에 한 소용돌이를 발견하기도 했어. 그건 내가 천랑성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이건 아직 얘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조금만 더 연구하면, 혹시, 계단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이건 나중에 차차 얘기해줄게. 언젠가 이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계획이거든.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이기에 아마도 충분할 것 같아.
어둠이 지나가고 극명한 밝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플래쉬 세례를 받았어.
나는 대스타가 된거야! 순회공연을 다닐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지. 나는 내 연구의 진가를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한건가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그 열렬한 환호에 일단 화답해주기로 했어.
나는 신문에도 나왔어! 나는 뜻은 몰라도 큰 글자를 읽을 수는 있었지.
"국립동물원의 식인 호랑이, 사형 집행일은 언제?"
"동물 보호 단체들, 반대 집회 벌려. 동물원 폐지를 주장"
"사람을 죽였으니 사형이 마땅"
"호랑이의 행복권"
"다음번 사고도 예측할 수 없어."
어떤 것 같아?
매일 계속되는 방문과 웅성거림들. 나는 더이상 이룰 것이 없었지만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언제나 심심하지 않았고, 심심하다는 말조차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너무 많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왜 불현듯 들었나 몰라. 이것을 늙는다고 하는 건가?
내가 사랑하는 태양빛, 별들의 운행, 함수들. 여전히 그대로였지.
바나나 잎은 그대로 푸르렀고, 나는 하품을 할 수 있었지.
내가 천랑성으로 가야할 날이 다가온걸까?
그곳에서 나를 받아주기는 할까?
자물쇠의 걸개만 풀면 될 일이었어.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그 시간, 공기, 냄새, 너무 좋아. 아름다워.
나는 재미있었어. 모험이 가득했어. 사랑하는 짝도 있었고, 많은 곳을 오갔고,
풀과 벌레와 숲의 동물들. 잎이 얼굴에 스쳐 바스락거리는 소리.
햇볕이 등에 새기는 빛의 점들...
도시, 포스터,스카이라인,비행기의 서비스... 기내식! 박수갈채.....
아. 그것들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된다면 더 아름다워지겠지.
한번 뿐인 것은 사라져버리는 불꽃놀이처럼 더 아름답고 찬란한 것임을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알고 있지.
나는 이만큼만 지니고 가고 싶었어.
내 짐보따리엔 이 이상은 들어가지도 않고, 더 이상의 짐으로 이 기억들이 희석되는 것도
원하지 않고, 딱 이만큼, 딱 이만큼만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갑자기 알게 되었어.
선조들이 이야기해온 그런 순간인 것이야. 한 때 나는 그걸 계속 부정해왔었지.
언제나 새로운 것과 그걸 느끼는 순간에 기분이 들뜨고 충만해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이젠 알 것 같았어. 나는 어른이 된 것이야.
나는 작은 짐꾸러미를 들고, 걸쇠를 풀고 천랑성으로의 계단에 올랐어.
내 보송보송한 입은 아직 숨을 쌔근쌔근 쉬고 있었지,
천랑성의 태엽장치는 여전히 잘 돌고 이제 많은 부분에
구석구석 실용적으로 녹아들어가 그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었어.
새로움에 대한 발견을 사랑하며 요동치던 내 가슴이 잠잠해지고, 이를 위해
펌프질하던 심장의 박동이 느려졌어.
새로움의 설렘보다는 충실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편안함이 찾아왔어.
태엽장치의 일정한 소리,
가끔 틱- 틱- 틱- 틱- 틱 - 뽁! 하며 아직 웃기는 잡음을 내는 태엽소리.
그 무엇도 이에 비할 수 없었어.